남의 돈을 빌려가서 떼어먹는 것은 언제나의 일, 옆에 끼고 있는 여자가 바뀌는 것 역시 언제나와 같은 일. 항상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주제에 활등자금은 받고나서 30분 내로 전부 써버리는 것 역시 항상 하는 일. 남이 득 보는 일은 절대 못 보고, 미운 말 한 마디라도 꼭 덧붙여줘야 하며, 남을 존중하는 일 역시 거의 없다.
재프 렌프로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물론 잘 찾아보면 좋은 점도 있다. 그는 말이 험하고, 행동도 그에 맞게 험하지만 자기 사람이 맞고 오는 것은 참지 못한다-물론 그 자신이 때리는 것은 별개다-. 가끔은 남을 잘 돌봐주는 면도 있다. 하지만 재프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좋은 점을 굳이 찾아야 할지에 대해 반문할 것이다. 그리고 재프 역시 자신의 좋은 점을 어필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고, 그것은 재프도 마찬가지였다.
일생에 한 번은 인연을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 인연의 종류는 분명 여러 가지일 것이다. 물론 재프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구태여 그 인연으로 쳐야 하나 생각하는 편이었지만-앞서 말했듯이, 재프 렌프로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단 하나에게만은 달랐다. 재프에게도 좋은 점을 보이고 싶은 사람은 생기는 법이다. 물론 누구나 관심이 있는 이성에게는 잘 보이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재프의 경우에는 그 관심이 있는 이성이 아주 많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내보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재프는 이 여자와 같이 있으면 혼란스러웠고, 자기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여자 문제에 있어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그가 만나는 여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가 원할 때면 언제나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며,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재프는 언제나 사리타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간단히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후후 웃으며 내려다보곤 했다. 자신이 어디에 가든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전부 지켜보고, 컨트롤하는 느낌이 좋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그라면 더더욱 좋아할리 없다. 하지만 그는 사리타를 떠나지 못했다. 그녀가 놓은 손을 황급하게 그러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나는 그녀를 떠날 수 없구나.
나의 메마른 사막에 존재하는 오아시스.
재프는 가만 손을 뻗었다. 마디가 굵은 구릿빛 손이 옆에서 잠든 여자의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린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이다. 계속해서 도박판을 돌아다니고, 나리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죽탕 얻어터지-고, 레오를 괴롭히고, 제드를 놀리고, 체인과 투닥거리며 스티븐의 한숨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리고 그 자신은 결국 사리타에게 귀결될 것이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옆에서 곤히 잠든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옆에 있는 저를 믿고, 의지하며 깊게 안심한 채 잠들어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곧 평화고, 자신은 이러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재프는 상체를 숙여 사리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부디 편히 잠들기를, 나의 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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